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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 조훈현 9단의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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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요약
- 조훈현은 1962년 9살에 프로 바둑기사가 되었으며, 1982년 한국 최초의 9단으로 승급했습니다.
- 그는 150개의 프로 제목을 획득했으며, 1980년, 1982년, 1986년에 한국 모든 개방 대회를 독점했습니다.
- 이창호와 서봉수와의 라이벌리티, 조치훈과의 우정 대국이 특히 주목받았습니다.
- 논란의 대국은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중요한 대결들이 바둑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커리어 개요
조훈현(1953년 3월 10일 생)은 한국 바둑계의 전설로, 4살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9살인 1962년에 프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세goe 겐사쿠 밑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쌓았고, 1972년 한국으로 돌아와 바둑계를 지배했습니다. 1982년 9단으로 승급하며 한국 최초의 9단이 되었으며, 150개의 프로 제목과 11개의 국제 제목을 획득했습니다. 1995년 1,000승을 달성했으며, 2012년과 2016년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승급 시기
- 1962년: 한국에서 프로 데뷔(1단).
- 1966년: 일본에서 1단.
- 1972년: 한국 복귀 시 5단.
- 1982년: 9단으로 승급(한국 최초).
이슈가 된 대국
조훈현의 주요 대국은 라이벌 서봉수와 이창호, 그리고 조치훈과의 대결이 주목받았습니다.
- 1973년 첫 제목인 채고위를 획득했으며, 같은 해 서봉수에게 명인에서 패배.
- 이창호와의 대결은 1989년 채고위에서 처음 패배, 1992년 배왕 16연승이 끊김.
- 조치훈과의 1980-1981년 우정 대국에서 2연패했으나, 이후 1991-2003년까지 승리.
조훈현의 커리어 분석
이 보고서는 조훈현(조훈현, 曹薰鉉, Cho Hun-hyun)의 커리어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제공하며, 그의 승급 시기와 이슈가 된 대국을 포함한 세부 사항을 다룹니다. 조훈현은 한국 바둑계의 전설로, 그의 경력은 바둑의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배경 및 초기 생애
조훈현은 1953년 3월 10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4살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9살인 1962년에 한국 바둑기원(한국기원)에서 프로 바둑기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바둑계에서 가장 젊은 프로 데뷔 기록 중 하나로, 그의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10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세고에 겐사쿠(Kensaku) 대사헌 아래에서 바둑을 공부했습니다. 세고에는 바둑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바둑 명인으로, 고 세이겐(吳清源)을 일본으로 초대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66년 일본에서 1단으로 승급했으며, 1972년 군 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 바둑기원에서 5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이후 한국 바둑계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커리어의 주요 단계
조훈현은 1973년 첫 번째 제목인 14기 채고위를 김인(金仁)을 상대로 획득하며 본격적인 제목 획득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같은 해 6기 명인에서 서봉수(徐鳳秀)에게 패배하며 첫 제목 손실을 경험했으나, 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학습 과정이 되었습니다.
1980년, 1982년, 1986년에는 한국의 모든 개방 대회(오픈 토너먼트)를 동시에 독점하며 바둑계의 절대 강자임을 증명했습니다.
- 1980년: 국수, 명인, 왕위, 기승, 배왕, 기왕, 대왕, 재왕, 백주스컵 등 9개 제목을 동시에 보유.
- 1982년: 10개 제목을 동시에 보유.
- 1986년: 11개 제목을 동시에 보유.
이러한 기록은 그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한국 바둑계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1982년에는 9단으로 승급하며 한국 바둑계 최초의 9단이 되었으며, 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1988년 제1회 인터내셔널 인 Cup에서 중국의 니위핑(聶衛平)을 상대로 우승하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또한, 삼성컵(2001, 2002), 후지쓰컵(1994, 2000, 2001)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5년에는 경력 1,000승을 달성하며 한국 바둑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습니다.
후반 커리어에서는 제자 이창호(李昌鎬)의 부상으로 인해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그는 여전히 바둑계의 거장으로 존경받았습니다. 2012년과 2016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승급 시기
조훈현의 승급 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1962년: 한국에서 프로 데뷔(1단).
- 1966년: 일본에서 1단.
- 1972년: 한국으로 복귀 시 5단으로 인정.
- 1982년: 9단으로 승급(한국 최초).
이 승급 기록은 그의 빠른 성장과 바둑계에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보여줍니다.
이슈가 된 대국
조훈현의 커리어에서 이슈가 된 대국은 주로 그의 라이벌들과의 대결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서봉수, 이창호, 조치훈과의 대결이 바둑 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 서봉수와의 라이벌리티:
서봉수는 조훈현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바둑 명인으로, 두 사람은 총 65번의 결승전에서 맞붙었습니다. 조훈현은 이 중 53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으며, 마지막 대결은 2010년 제1회 대주컵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라이벌리티는 한국 바둑계의 경쟁을 상징하는 중요한 대결로 여겨집니다.
- 이창호와의 라이벌리티:
이창호는 조훈현의 제자이자 바둑계의 또 다른 전설로, 두 사람의 대결은 세대 교체를 상징합니다. 1989년 29기 채고위에서 이창호가 조훈현을 처음으로 꺾었으며, 1992년 배왕전에서 조훈현이 16연승 중 처음으로 패배했습니다. 2011년 기준, 두 사람의 제목전 대결은 이창호가 47승, 조훈현이 19승으로 이창호가 앞서고 있습니다. 이 대결은 바둑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으며, 조훈현의 커리어 말기와 이창호의 부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 조치훈과의 우정 대국:
조치훈(曹薫勲)은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출신 바둑기사로, 1980년과 1981년에 조훈현과 우정 대국을 진행했습니다. 이 대국에서 조훈현은 양쪽 모두에서 패배했으나, 이후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조치훈에게 패배하지 않았으며, 2003년 제8회 삼성컵에서 다시 패배했습니다. 이 대국은 한국과 일본 바둑계의 교류를 상징하며, 바둑 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 논란의 대국:
조훈현의 경력에서 특별히 "논란"이 된 대국은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결은 항상 바둑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이창호와의 대결은 세대 교체와 관련된 논의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는 바둑 팬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상세 타임라인 및 지원 증거
다음은 조훈현의 주요 커리어 이벤트를 타임라인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1953년 3월 10일: 목포에서 태어남.
- 1962년: 9살에 프로 데뷔(1단).
- 1966년: 일본에서 1단 승급.
- 1972년: 한국 복귀, 5단 인정.
- 1973년: 첫 제목(14기 채고위) 획득, 서봉수에게 명인에서 패배.
- 1980년: 9개 제목 동시 보유.
- 1982년: 10개 제목 동시 보유, 9단 승급(한국 최초).
- 1986년: 11개 제목 동시 보유.
- 1988년: 제1회 인 Cup 우승.
- 1995년: 경력 1,000승 달성.
- 2003년: 제8회 삼성컵에서 조치훈에게 패배.
- 2010년: 서봉수와 마지막 대결(대주컵).
- 2012년, 2016년: 국회의원 선출.
다음 표는 주요 제목과 대회 기록을 요약한 것입니다
카테고리 | 세부 사항 |
프로 데뷔 | 1962년, 9살, 1단. |
승급 기록 | 1966년 일본 1단, 1972년 한국 5단, 1982년 9단(한국 최초). |
국내 제목 | 총 139회, 국수 16회, 명인 12회, 왕위 13회, 배왕 20회 등. |
국제 제목 | 총 11회, 인 Cup 1회(1988), 삼성컵 2회(2001, 2002), 후지쓰컵 3회(1994, 2000, 2001). |
주요 라이벌 | 서봉수(65회 결승, 53승), 이창호(제목전 47-19 패). |
주요 대국 | 1989년 이창호 첫 패배, 1992년 배왕 16연승 끊김, 1980-1981년 조치훈 우정 대국. |
결론 및 시사점
조훈현의 커리어는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그의 승급 시기와 주요 대국은 바둑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라이벌리티와 우정 대국은 바둑 팬들에게 큰 흥미를 제공했으며, 특히 이창호와의 대결은 세대 교체를 상징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바둑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후배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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